숨이 차서 더 이상 뛸 수가 없습니다. 다리가 무거워 함께 줄지어 달리던 훈련 파트너들에게서 점점 뒤쳐집니다. 들쭉날쭉, 대충대충. 러너의 가장 큰 덕목인 ‘꾸준함’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저로서는 꾸준히 훈련을 한 사람들을 쫓아갈 수 없습니다. 트랙 30바퀴를 같은 속도로 뛰는 지속주 훈련의 마지막 다섯 바퀴는 저의 불성실함을 일깨우는 ‘정신각성 훈련’이 되었습니다.
겨울 달리기 생활의 나태함을 극복하기 위해 지난 12월부터 ‘동아마라톤대비 겨울훈련’에 참가하고 있습니다. 방선희 감독을 중심으로 모인 마라톤 클럽 ‘Marathon Forever(MF)’의 훈련에 살짝 곁다리로 참가하고 있는 것입니다.
수요일 저녁 잠실운동장 보조 경기장에는 MF 회원들 뿐 아니라 다른 마라톤클럽 회원들까지 100명 이상이 살을 에는 기온에도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운동을 마치고 물을 마시는 러너들의 얼굴에는 소금기가 가득합니다. 열성적인 러너들의 모습 속에서 따뜻한 봄에 피어날 그 분들의 성공의 꽃을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추운 겨울에 흘린 땀을 먹고 자란 성공의 꽃은 더욱 찬란하고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인내. 아마 달리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뽑는 달리기 생활에 필요한 덕목일 것입니다. 어떠한 고통과 역경이라도 이겨내려면 강인한 인내심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달리기를 하면서 고통을 경험하지 못한 러너라면 자신의 잠재능력을 최대한 발휘할 만큼의 목표를 설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달리기 능력을 키워나가기 위해서는 누구나 한번 이상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노력의 과정에서 고통을 겪게 됩니다. 고통을 참고 이겨낼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은 먼저 참고 견뎌내려는 마음, 즉 인내심에서 나옵니다.
그러나 러너라면 누구나 자신에게 필요한 만큼 인내심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에 고통을 참아내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씀바귀보다도, 육모초보다도 쓸 수밖에 없습니다.
인내 외에도 달리기 생활을 영위하는데 필요한 덕목이나 마음의 자세는 더 있습니다. 달리기 생활에서 ‘자신만의 성공’을 얻기 위해서는 또 강한 열정이 필요합니다. 열정은 헌신과 몰입을 가능하게 하는 덕목입니다. 아무리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이라도 헌신과 몰입 없이 성과를 낼 수 없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있는 사람은 적은 노력으로 남보다 더 잘 달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만족할 수 있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과정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열정, 헌신, 몰입은 미친 듯 광적으로 달리기만 하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러너에게 꼭 필요한 덕목 중에는 ‘절제와 균형’이 있습니다. 절제의 덕목은 운동을 못하게 하거나 게으르게 만드는 유혹을 참아 내는 힘이기도 하지만 과욕을 억제하는 균형을 유지할 수 있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개인적으로는 달리기 생활에 가장 필요한 덕목은 ‘겸손’이라고 생각합니다. 겸손은 자신을 낮추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낮추어야 배움의 자세가 생깁니다. 겸손의 마음이 있어야 나보다 더 열심히 훈련하는 사람을 존경하고, 그를 보면서 자신을 독려해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면 세상 사람들과 만사에 감사함을 느끼고 존중할 수 있습니다. 감사와 존중의 마음은 달리기에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지만, 달리기를 통해 가장 많이 배우는 덕목이기도 합니다. 내가 달릴 수 있다는 것, 나의 몸을 물려주신 부모님, 내가 달릴 수 있게 도와주는 가족들, 그리고 직장. 달리기 생활을 하면서 이 모든 것에 감사의 마음이 절로 우러나옵니다.
인내, 열정, 헌신, 절제, 균형, 겸손, 감사하는 마음. 달리기 생활 뿐 아니라 우리의 인생살이에도 꼭 필요한 덕목들 입니다. 얼마 전 한 잡지사의 인터뷰에서 ‘인생은 마라톤이다’라는 말에 대해 딱 잘라서 동의한다, 안한다로 대답해 달라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저는 ‘동의하지 않는다’로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마라톤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인생은 마라톤’이라는 말 속에서 지루하고 긴 과정을 연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달리기 생활에 필요하고, 또 달리기를 통해 배우는 덕목들을 아는 진정한 러너가 그 말을 한다면 동의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새무얼 스마일즈는 140년 전에 쓴 ‘자조론(self help, 21세기북스 간)’이라는 책을 통해 성공적인 인생이 가르쳐 주는 교훈을 당대 청년들에게 전해 주고자 하였습니다. 이 교훈은 오늘날 우리의 달리기 생활이나 인생살이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생의 진리는 수 천년의 세월이 흘러도 바뀌지 않으니까요.
“더위, 추위, 배고픔, 목마름 그리고 어떠한 불편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기르지 않고서는 어떤 분야에서든 뛰어난 업적을 남길 수 없다. 안락한 생활을 누리고 온갖 쾌락을 즐기고도 영예로운 대우를 받고자 한다면, 그것은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탁월한 기량과 명성은 편안하게 자는 동안 저절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깨어 일어나 정신을 바짝 차리고 꾸준히 노력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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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성(마라톤 칼럼니스트)
서울대학교 독문과 졸업. 조선일보 기자를 거쳐(주)런너스클럽의 대표로 일하며, 95년 마라톤 풀코스를 처음 뛴 후 30여회 완주했다. 저서로는 <나는 달린다>, <달리기가 가르쳐준 15가지 삶의 즐거움>을 번역했고, <한국형 파워워킹>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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