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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고통 없이 runner's high는 없다. 81킬로 CP를 향해 가는데 이제 날도 훤히 밝았고 저 멀리서 박 원요 형님이 카메라를 들이댄다. 열심히 달리는 와중에도 한손을 번쩍 쳐들고 파이팅! 을 외친다.
CP에 도착해보니 먹을 것이 지천이다. 와! 신난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네. 소화에 좋은 콜라를 곁들여 김밥말이 네 개를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옆에서 누군가가 "꿀물 드릴까요?"한다. 감사하게 넙죽 받아 마시고 "한잔 더 마셔도 될까요?" (무슨 은행인가에서 나왔다고 했던가요? 기억이 가물가물...죄송...) 이 왕성한 식욕은 어디서 온 걸까? 후반전은 어차피 체력싸움 아닌가? 먹을 수 있을 때 먹어두면 다 요긴하게 에너지가 되는 것이지.
배불리 먹었으면 소화를 시키려고 걸어가야 하는데 조금만 가면 어제 밤에 얘기한 남한강 최고의 풍치가 기다리고 있기에 거기까지만 살살 뛰어보자고 부추겼더니 이제 달리기에 이력이 난 K는 앞서서 냅다 달려가고 뒤에서 허겁지겁 달리던 나는 갑자기 왼쪽 배가 콕콕 쑤신다. 식사 후에 갑자기 내달리니 그렇게 된 것 같다. 나는 페이스를 조금 늦추고 뒤따르니 어제 내가 말한 그 자리에 서서 K가 기다리고 있다.
눈을 들어 저 멀리 펼쳐진 장관을 보라고 하였다. 그곳에는 유유히 휘돌아 흐르는 남한강 뒤편으로 경기의 마터호른으로 불리는 백운봉부터 용문산 정상까지 장쾌한 능선이 뻗어있고 아침 해는 벌써 솟아올라 온 누리를 밝히고 있지 않은가? 저 장쾌한 능선 위로 떠오르는 일출은 더욱 장관이겠지만 이만해도 멋있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가?
나는 천진암 대회에 올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나를 반기는 이 기막힌 풍치를 즐기며 로렐라이 언덕에 못지않다고 칭송하면서도 아직까지 마땅한 이름을 짓지 못하였다. 까짓 이름이 어떠하든 그 모습은 항상 그 모습이 아니겠는가?
가슴도 후련해지는 그 모습을 뒤로 하고 언덕을 걸어올라 내리막을 뛰어가기 시작하는데 이제는 네거티브 스플릿을 시험해볼까? 하는 생각으로 달려보니 몸도 편안해지고 달리기가 여간 즐거운 것이 아니다. 이 정도라면 어제 이곳을 넘어갈 때의 페이스보다 빠르지 않을까 싶다. 이것이야말로 runner's high가 아닐까? 고통 후에 찾아오는 편안하고 황홀한 달리기의 삼매경. 고통 속에서도 기쁨과 즐거움이 솟아나는 달리기의 매력.
그렇게 오르막 내리막을 가끔씩 걷기도 하면서 달리는데 앞장 선 K가 서서히 페이스를 올리기 시작한다. 또 다시 질주의 힘이 솟아난 것일까? 뒤따르던 나는 가슴 뭉클하며 눈물이 찡하였다. 질주하는 그의 모습은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아니 거룩하기까지 하였다. 아까까지만 해도 쉬지 않고 고통을 호소하던 그가 아니던가? 달리고 있는 그는 얼마나 고통을 참아가며 또 얼마나 고통과 맞서 싸우며 달리고 있을 것인가?
오직 그는 완주에 대한 열망 하나만을 가슴에 품고 투병중인 장인에게 드릴 기쁨의 선물을 기대하며 무서운 집념으로 내달리고 있지 않은가? 이보다 더 아름답고 거룩한 것이 있을까?
나는 눈물을 닦고 흐뭇한 모습으로 뒤따라 달리며 반드시 함께 완주해야겠다는 다짐을 또 한 번 다진다.
(7)마지막 위기를 넘어서 당당한 완주까지 잘 달리던 K가 이제 걸어간다. 멀리 뒤따르던 내가 따라잡는다. 싱긋 웃으며 잘 달리고 있다고 칭찬해준다.
그러나 질주하는 동안 페이스를 잃은 K는 이제 얼마나 남았는지 묻는다. "글쎄 15킬로 쯤 남지 않았을까?" "아니,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 그것밖에 못 왔습니까?" "정확하진 않지만 아마 그 정도이겠지. 후반에 지치면 1킬로도 멀어 보이는 법이니까."
또 다시 뛰다 걷다 하다 보니 나타나는 86킬로 표시판. K는 맥이 빠지는 모습이다. 그렇게 열심히 달려왔는데도 아직 갈 길이 멀다니..... 울트라가 역시 힘들긴 힘드네요. 이제는 걸어가도 완주할 수 있지 않을까요?
K는 서서히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그렇게 나약해져서는 안 된다. 그대는 반드시 완주해야만 하는 이유가 있지 않은가? 이제는 다른 대안이 없어. 그저 뛰고 또 뛰는 것밖에는..... 지금 고통은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없어. 그저 참고 맞서 싸워 나갈 수밖에는....
힘들어 하는 K가 안쓰러워보였지만 그래도 K를 독려해 가며 뛰다 걷다 하는데 어제 우리가 서로 만났던 장소도 지나고 길 건너편에서 강남지맹의 이 종만 부회장이 부른다. 길을 건너가 수박도 얻어먹고 또 다시 가야 하는데 남은 거리 9킬로. 걸어가면 절대 완주하지 못한다는 그의 말을 들은 K가 또 다시 질주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제 그 질주의 거리는 점점 짧아지고 페이스도 느려진다.
K가 안쓰러워진 나도 의문에 빠진다. 저렇게 힘들어하는데 걸어가면 정말 완주할 수 없을까? 남은 거리를 모르니 그의 페이스를 조절하기가 힘이 든다. 분원리까지만 가면 대충 감을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어쨌든 지금은 힘들더라도 독려하며 갈 수밖에 없겠지.
열심히 달려주고 또 힘들면 걸어주고 또 달려주고..... 그렇게 달려 온 분원리. 분원리 3거리를 돌아서니 96킬로 표시판. 이제 남은 거리 4킬로. 걸어가도 1시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거리이고 남은 시간은 1시간 30여분. 조금은 마음이 놓인다.
언덕을 올라서고 스트레칭을 한 후 이제 달려 내려가야 하는데 K는 이제 걸어서 갈 테니 먼저 가란다. 그래. 이제는 걸어가도 충분히 완주할 수 있는데 무리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이제 K를 뒤에 남겨두고 내리막도 달리고 오르막도 달리며 내 페이스대로 달려보았다. 몸도 가볍고 뛸만하다. 마지막 오르막을 올라가서 나는 길가에 앉아 신발을 벗고 휴식을 취했다. 어차피 골인하고도 쉴 거 여기서 쉬어가지 하는 마음으로.....
뒤따르던 주자들이 하나둘씩 지나가는데 K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길 건너에서 이 종만 부회장이 소리를 지른다. "아니, 형. 다 와 가는데 왜 그러는 거야?" 내가 지쳐서 퍼져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나는 싱긋 웃으며 "뒤에 따라오는 파트너 기다리고 있어."하고 응대해준다.
조금 기다리니 K가 나타난다. 다시 달리기 시작하니 K가 말한다. 먼저 가면 따라서 가겠다고.... 나는 다시 달려 골인지점인 광수중학교 앞의 그늘진 공터에서 K를 기다렸다. 이번에는 생각보다 K가 빨리 나타났다. 절뚝거리는 모습으로 그래도 계속 달려서 온 것 같다. 이제 학교 오르막은 걸어서 가자고 하는데도 K는 달려서 올라간다.
그와 나는 손을 맞잡고 골인지점을 향해 마지막 힘을 모아 힘차게 달려갔다. 드디어 골인!!! 15시간 30분 만에 우리는 당당히 완주한 것이다.
K와 나는 두 손을 맞잡고 함께 완주의 기쁨을 나누었다. 물론 K의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클 것이고 장인어른께 완주의 선물을 드릴 생각에 들떠 있겠지만 나 또한 즐겁고 만족한 아니 그 무엇보다 더욱 소중한 또 다른 완주의 기쁨을 갖게 되었다.
[3]에필로그 이번에도 역시 장황한 완주후기가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그날의 감격에 다시 젖어볼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개인의 신상에 관한 이야기도 있고 K에 대한 마땅한 호칭이 없어 고민하다가 나와 동반주를 한 그 주자를 K로 표현하게 되었음을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K의 장인어른께서 하루속히 쾌차하시기를 다시 한 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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