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내일이면 울트라 출사표를 던진날인데, 아무래도 체력이 부족할 듯싶습니다. 남편과 궁리끝에 고칼로리의 절정!  피자를 먹기로 합의를 봅니다. 피자 한판을 시켜 놓고 온가족이 둘러 두 쪽씩 먹고, 물려서 더 이상 못 먹게 되었을때쯤, 콜라를 들이 붓습니다.

 좋아, 됐어. 이제 열량은 충분해.

 영아, 내일 밥 든든히 먹고가야 해.

 알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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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합니다. 비가 그친다고 했는데 비가 계속 오나봅니다. 가뭄에 콩 나듯이 전화 주시는 정재형님 전화옵니다.

"애비야, 비온다. 뛰다 힘들면 그냥 수퍼에 들어가서 쉬어버려"

"아니, 행님!!! 수퍼 가서 쉬면 언제 돌아옵니까??"

 시청 앞 집결, 광주로 향합니다. 아, 그런데,, 갑자기 양해언 회장님께서 차를 세우시는 군요. 밥 먹는답니다 !!

한 시간 반 후면 뛰어야 하는데 밥을 아주 빵빵하게 먹어두라니, 그래, 이유가 있겠지 싶어서 아주 그냥 막 퍼먹습니다.

 출발지인 광주 광수 중학교에 도착해보니 벌써 우리 헐레벌떡 응원단 단상위에 떡하니 자리잡고 실실 웃고 계십니다. 어쩜 그렇게 아저씨들만 오셨는지, 다른 응원단보다 매우 많이 칙칙합니다. 채규일부회장님, 김무철회장님, 김서봉위원장님, 정창훈 아저씨, 용석주아저씨,, 흠.... 그리고 백용기 아저씨는 마음을 듬뿍 담은 인절미 한 상자를 보내셨습니다. 그 떡을 또 먹습니다.

 아,,, 이제 배가 터질 것 같습니다. 이 배부름은 30km쯤 가서야 꺼지게 됩니다 ㅠ.ㅠ

 하여간, 제 행동에 울트라 초짜의 어설픔이 보였을까요, 정창훈 아저씨는 번호표를 옷핀으로 일일이 달아주시면서 얼굴에는 걱정하는 모습이 가득합니다. 김무철 회장님, 장난기를 발동하시면서 이것저것 챙기십니다. 김서봉 아저씨는 제가 왜 거기에 있는지 처음에는 알지도 못하십니다. 채규일 아저씨에 대해서는 노코멘트 입니다.

 출발 직전 저기 멀리서 광득형님과 강총무님 보입니다. 어!!! 울컥합니다. 갑자기 우리편이 생긴 기분입니다.

 비가 그치지 않은 와중에 출발해버리는 군요.  출발을 알리는 축포도, 멋진 멘트도, 갑지가 내 쏘는 사람도 없이 그냥 몸풀듯 사람들이 뛰어나갑니다.

 " 좋아,,, 내가 간다. "

 살살살살,,,, 우리 팀끼리 모여서 뛰는 데, 옆에서 나타난 은색 프라이드,,창문을 찌익 열더니,, 해맑은 얼굴의 광득형님과 강총무님, 화이팅을 외칩니다.

물론 " 애비야, 힘내. 이제 다 왔어. 99km만 가면 돼!" 이게 화이팅이라고 할 수 있다면 말입니다.

 좀 더 가서 이제 천진암으로 향하는 오르막입니다. 아직 비는 떨어지지만 산속 공기가 느껴지고 푸른 잎파리가 아름답네요.

이 상쾌한 기분을 깨는 반대 편의 익숙한 목소리....

"애비야, 이제 다 왔어, 이제 98km만 가면 돼!!!"

 이런 공포는 처음입니다. 광득형님과 강총무님이 계속 따라올까 이렇게 두려웠던 적이 없습니다. 저 사람들 나를 놀려먹으려고 밤새 저렇게 따라 다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몸서리를 칩니다. 당연 끈기 없는 이 두 사람은 그 이후 사라졌지만, 그 환청은 오래토록 남아서 화들짝 놀라게 됩니다.

 8.2km 1차 반환점 천진암 찍고 내려옵니다. 우리의 산사람 장인권 아저씨는 엄청난 속도로 벌써 가버리고 안계시는군요.

 아까의 오르막이 쉬운 길이 아니었음을 내려오면서 깨닫습니다. 원래 오르막은 걷는 울트라의 특성이지만 첫 오르막은 약이 된다며 계속 뛰어야 한다는군요.

 20km쯤 가니 이제 해가 뉘엿뉘엿 집니다. 어둠이 내림과 동시에 사람이 인적한 숲길로 접어 듭니다. 하나 둘 주자들이 페이스대로 벌어지고 뒤에서 보니 주자들의 가방에 달린 안전등만이 반짝반짝 빛납니다. 여기저기 반짝이는 붉은 깜박이가 너무 아름답습니다. 하늘의 별이 땅에 내려와 내 갈 길을 알려주는 것 같아 행복합니다.

 우리팀은 이제 한몸 같습니다. 선두에 선 미소언니와 나, 뒤에 따르는 울트라클럽 박영근총무님, 도영아저씨, 양해언회장님, 최성운 아저씨, 강신복 아저씨, 붙었다 떨어졌다는 반복하는 일반 독립군 참가자들... 자 이제 우리는 함께 끝까지 갈겁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우리의 훈련부장님 섭 3의 영웅 도영아저씨가 도통 말씀이 없으십니다.

 힘들어 죽겠답니다. 온 몸이 안아픈데가 없답니다. 이제 30km도 못왔는데,, 분명 뻥 일것입니다. 아니,,, 나를 상대로 뻥을 치시다니...

 또 그렇게 쌔앵~ 가버리신 장인권 아저씨,, 곧 잡히시는 군요.. 거봐요... 첫 끝발은.....

 1차 체크 포인트 가기 전, 58개띠 분들과 우리의 숨은 공로자 자봉 송화언니를 만납니다. 목도 축이고 , 배고 채우고, 다시 출발,

몇 번의 언덕과 고갯 마루를 넘어서서 35.4km 지점의 1차 체크 포인트에 도착합니다.

 주최 측이 왜 여기서 마실 것과 먹을 것을 제공하는 지 금방 알게 됩니다. 이제,, 공포의 항금고개가 코앞에 있기 때문이죠.

우리의 캡틴 박영근 총무님, 당부하십니다. 이제 부터 오르막이 계속되는데 천천히 걷지 말고 갑시다.

5km 정도 서서히 얕은 오르막 뒤에 항금 고개를 만납니다. 높네요. 높아. 그냥 걸어서 올라가도 숨이 차 오릅니다. 걸으면서 부지런히 다리와 어깨, 목 스트레칭을 합니다. 1.5km의 높은 고갯마루를 넘어가니 마치 강원도의 한적한 도롯길 같은 풍광이 펼쳐집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내리막에 풀냄새, 나무냄새, 새소리,,,, 사뿐사뿐 뛰어가는 내 두다리,,,이 보다 더 좋을 수 있을까요.

 교차로 48.6km 지점, 또 송화언니의 보급대를 만납니다. 자 이제, 반환점에서 만나요.

 양평 시내쯤 갔을까,,, 서봉아저씨, 전화입니다. 정확한 위치를 알려달라십니다. 설마,,,, 오시려고???? 이 시간에????

 시내를 통과해서 다시 산길로 접어들고 비교적 얕은 오르막과 내리막을 지나 드디어 반환점에 왔네요. 58.6km. 새벽 1시 10분 남짓... 한참을 먼저 앞서 가신 하남 시청팀도 식사 중이시네요.  메뉴는 장어탕!!!!! 뭐??? 장어탕??????? 찰나에 머릿속에 장어들이 막 헤엄치는 국물이 떠오르고...속이 울렁울렁,,, 그래, 내가 다 해도 이것만은 못하겠다. 안먹어!! 못먹어!!!

양해언회장님의 걱정도 뿌리친 채,, 우걱우걱 인절미를 씹어 먹습니다. 바나나도 입에 막 구겨 넣습니다. 물리도록 먹고나서 커피도 한 잔 후딱 들이킵니다. 꼭 밥먹어야 기운이 나는 건 아니라며 스스로에게 힘을 불어 넣습니다.

 그 와중에 미소언니랑 함께 공식 사진사 앞에서 얼굴을 디밀며 사진 찍어 달라고 우깁니다. 사진사는 남감해 하면서도  어물쩡 셔터를 누르지만, 제가 신경질 냅니다. "아저씨! 눈감을 때 찍으면 어떻해요!! 이쁘게 잘 찍어주세요!!'

 그 사진사 완전 쫄아서 이번에는 성심성의껏 찍습니다.  자신의 본분에 충실한 사진사입니다.

 박영근 총무님, 모두를 불러들여 다시 출발 명령 내리십니다. 천천히 갑시다. 천천히... 박영근 총무님의 이 말씀이 저를 완주하게 했다는 건 나중에 가서야 알았습니다.

 63km정도 쯤....아,,, 저분은.......... 설마........ 서봉위원장님 이십니다!!!! 뒤에 처진 장인권 아저씨를 데리고 반환점을 향해 뛰고 계십니다. 서봉아저씨는 사이보그 인가요?? 어떻게,,,,12시까지 하남에서 막걸리잔을 기울이시던 분이 지금 여기서 뛰고 게시는 거죠??? 그 체력과 의욕은  풀리지 않는 미스테리입니다.  이후 서봉아저씨와는 85km 쯤에서 다시 상봉하게됩니다. 번호표 없다고 밥도 안줬다고 투덜대십니다. 하하하.......

 어쨌든,, 아까 즐겁게 내려왔던 그 항금고개길을 이제는 오르막으로 가고 있습니다. 시청팀이 우리팀 꼬리에 붙었네요.  으쌰으쌰, 갑니다. 해가 뜨기 전에 되도록이면 많이 움직이고 싶었지만 참습니다. 다시 건너서 내려온 항금고개 아래, 76km 네요. 잠깐 또 먹고, 볼일 보고, 금새 출발합니다. 이제는 우리 무리가 꽤 많아 집니다. 우리팀에 시청팀, 그리고 우리 자봉의 보급혜택을 받고자 하는 낯선 이들까지요. 얖은 내리막 5km를 다시 가면 아까 1차 반환점 81.4km 지점입니다.

 아, 우리의 도영아저씨,,, 많이 힘드신가요. 말도 못하시고,, 모든 질문에 똑같은 대답하십니다.

"온 삭신이 안아픈데가 없어."

 그 와중에 너무 웃깁니다. 솔직히 아주 고소합니다. 제가 풀코스 뛸때,,, 아직 1시간을 더 이런 고통에서 헤매여야하는데,, 벌써 도착했을 섭 3주자들을 떠올리면 그 고통이 2배가 되었던 그 기억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도영아저씨를 막 괴록히고, 막 놀리고 싶습니다.

 마의 구간이라는 80km 군요. 저는 아주 좋습니다. 물론 완벽하게 좋다는 건 아니고요, 80km를 뛰었지만 다리는 여전히 가볍고, 더 튀어 나가고 싶다는 충동이 저를 사로잡습니다. 그런 이기적인 마음이 들었을때, 박영근 총무님이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천천히 맞춰 가면 우리 모두 무사히 완주할수 있어요. 앞으로 갈 거리가 짧은게 아니예요"

 우리의 막강 철녀 미소언니 목소리도 우렁찹니다. 오르막길에서 "반 보, 반 보!!" 를 외치면서 자기는 막 박차고 올라가버립니다. 뒤따라 오시던 시청팀,,선두가 너무 빠르다며 끊임 없이 궁시렁 대시더니 현실과 타협하셨나 봅니다.흐흐. 어느새 없어졌군요. 

 이제 남은 길은 약 15km 정도... 해가 뜹니다. 아,,,,,, 해가 뜹니다... 급격한 피로가 몰려옵니다. 아직 살만합니다. 하지만 도영아저씨는 여전히 말이 없으십니다.

"도영아저씨, 비타민C 하나 드릴까요?"

"그래, 아무거나 줘 봐,"

"도영아저씨, 사탕 드실래요?"

"그래, 하나 줘봐"

"도영아저씨, 제가 사탕 까드릴까요?"

"아이고, 아무리 그래도 내가 사탕하나 못 까먹을까봐?"

ㅋㅋㅋ.. 아니요,,,, 그건 아닌데 그냥 까 드리고 싶네요...흐흐흐.

8km 정도 남기고 다리고 무거워집니다.

 서봉아저씨와 강신복 아저씨는 앞서 가시고, 장인권아저씨는 뒤에 계시다는 전갈만 받았을 뿐, 이제 같이 뛰고 있는 사람은 미소언니와 도영아저씨와 박영근총무님입니다, 미소언니는 빨리 뛰고 싶어서 안달 났습니다. 하지만, 결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처음 약속처럼, 저와 도영아저씨를 꼭 데리고 뛰려는 그 마음이 고마워서,,, 그래서 "걷자"소리 못하고 따라갑니다. 미소언니가 두 번째로 참가한 이번 대회에 목표 기록이 13시간 30분 입니다. 우리 때문에 언니가 그 시간안에 못들어갈까 걱정됩니다. 박영근 총무님, 제 무거운 몸을 아시는지 괜찮다 하십니다. 아닙니다. 저는 그냥 몸이 피로해졌을뿐, 마음은 너무 가볍습니다. 여전히 도영아저씨한테 장난칠 힘은 남아있습니다. 그리고, 입도 살아있구요...ㅋ.

 꺅!!!!! 저기 거리 푯말이 보입니다. "99km" . "99km" "99km" "99km" "99km" "99km" "99km"

 아마도 남은 거리 "1km"라고 써있었다면 그 기쁨이 덜 했을겁니다.

 몇 초 싸움, 몇 분 싸움이 아니라는 건 마지막에 더 확연해 집니다. 사진사가 잘 찍을 수 있도록 앞서 골인 하는 사람에 일부러 거리를 두어 줍니다.

 우리 팀 4명도 서로 순서를 정합니다. 미소언니와 박영근 총무님은 첫 출전자인 저와 도영아저씨에게 양보를 하고, 도영아저씨는 또 저에게 양보를 합니다. 그래서 제가 제일 먼저 골인하고 사진 찍히고, 도영아저씨가 들어오고, 미소언니와 박영근 총무님께서 뒤를 이으십니다.

 미소언니, 도영아저씨와 제가 얼마나 설레발을 치면서 사진찍으라고 사진사들한테 나댔는지,,, 오만 포즈로 사진을 막 찍어댑니다. 골인 푯말 앞에서, 시계앞에서, 월계관 쓰고, 서로 손잡고,, 아무튼... 사진사가 피곤해하든 말든,,,도영아저씨는 더 합니다.

"아, 그 사진 사면 돼, 사면 돼. 찍어,찍어..."  

  에라,,,, 구질구질하건 말건,, 걍 막 찍어대는데,, 솔직히 그 사진 나와도 걱정, 안나와도 걱정이네요.

[에필로그]

 그 밤에 엄청난 문자질과 전화질로  정신사납게 해서 긴 거리도 느끼지 못하게 도와준 회원님들께 감사드려요. 울트라 연습할때 제 옆구리살이 출렁거리다는 말로 제 염장을 질러주신 채규일 부회장님, 이젠 사랑으로 용서하겠습니다 ^^.

원하는 걸 말만 하면 다음 만나는 지점에서 쨔안~~ 대령해주신 유송화언니의 지극정성 자봉에 정말 탄복했어요.

한 순간도 제 옆에서 떠나지 않은 미소언니한테도 무한 애정 보냅니다. 대회 마치고 사우나 가서도,,, 아주 그 체력 끝내주더군요.

냉탕에서 혼자 첨벙첨벙... 일요일 이른 아침 목욕하러 나오신 그 동네 할머니들 눈길이 언니한테만 머물렀다는 건 모르지??ㅋ

골인을 앞둔 3km 지점에 박영근 총무님 말씀이 계속 떠오릅니다.

"이제 우리가 걸어도 완주는 할 수 있지만, 울트라대회에 충실하는 의미에서 천천히라도 걷지 말고 뜁시다"

13시간 20분.. 그리고 100km.

가슴에 깊이 새길랍니다.